BR 2049 = (Human + Replicant) + A.I.

[1] K&J
  얼굴이 노상 피범벅이 돼서 상처투성이로 돌아다니는 자가 다름 아닌 "껍데기" 레플리컨트라는 점은 82년 작의 정통성을 잇는 답습이다. 거기에 더한 AI의 등장과 역할은 21세기의 감성적 저변에 호응하는 정도의 타성에 머문 것 같지는 않다. 0과 1의 조합으로 현출하는 "조이"이야말로 당 영화에서 한술 더 떠 가장 인간적인 것의 정통성을 체현하는 인성에 속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카스트와 흡사한 탄생 서열 및 존재 등급을 감안하면 영혼이 없다고 멸시받는 유사 인간인 동시에 온통 상업 광고로 뒤덮인 디스토피아의 슬럼가에서 경제 활동을 하며 사는 레플리컨트 '상품' KD6-3.7이라는 소비자에 의해서 인조인간 이상으로 무한 대량 생산의 극치에 있는 추출된 인간미가 육체적 실체를 못 가진 시청각적 AI 상품으로 소비된다고 하니...



KD6-3.7 THE SKIN-JOB

  레플리컨트 러브가 레플리컨트 판매 영업을 하는 장면처럼 케이도 소비 생활을 하되 특화된 인공지능처럼 소비되는 특화 제품 중 하나에 불과하다. 탄생 용도는 가히 리빙 데드 못지않았으나, 이런 영혼 없는 소비 노동자를 대량 생산하는 세상과 월래스 사는 케이의 삶과 표정에서 희노애락을 거의 다 지우고도 전동기와 톱니바퀴와 유압 실린더 등으로 작동하는 로봇이 아닌, 웬일인지 술과 음식 종류를 자유로이 고를 수 있는 만큼의 사적인 자유의지와 인공지능 소비 정도는 허락한 모양이다. 게다가 일당백의 뛰어난 체력과 지능에 대하여 상명하복 기질을 얄궂은 음성 복창 시스템으로 관리해서 공공의 삽질 노동력으로 전환하고 헌신하도록 한 것이 마치 어지러운 지상에 경제 질서와 약간의 평정이나마 가져온 월래스의 공헌이었을 것만 같은 사회 분위기다.

  성년으로 태어나 유년의 기억을 가지면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이 가짜 같다. 그런 인공 과거를 정신 구성의 일부로 가진 케이의 비운에 견주어 조이의 디지털 운명은 어떠할까. 공감하는 미소와 위로하는 눈물 등 성선설적 특징을 가진 인격성 프로그램은 구입되어 가동된 시점서부터 케이와의 사생활이라는 맞춤학습형 특이점을 기억으로 구축하며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 무론 그런 소비 산업적 목적이란, 동류만을 색출하여 처단하게 되어 있는 규격화된 인성의 임무인지 매춘 노동자 메리에트처럼 비인간의 규격화된 직업인지 모를 일개의 레플리컨트 입장에서 알 바는 아니다. 어차피 가짜 인생이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 이래의 사람 형상과 커플링 정서에 빚지게 되면 고독 또한 덤으로 따라오고 케이에겐 조이가 더없이 소중한 안식처로 묘사된다. 이처럼 여성성 홀로그램에 심히 감정 이입하는 유사 인간을 오브젝토필리아 환자 같다며 비웃기는 어렵다. 당 영화의 시점은 사실, 한낱 인공지능에 지나지 않는 것이 유사 인간의 사적 인생에 껍데기조차 못 되는 덤과 같은 역할로 끝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공적인 유사 인간미가 인간들이 정작 잃고 말았다 할 것을 어떤 식으로 대체하고 있는가에 관한 메타포로도 그리 낯설지는 않다.



홀로그램도 사랑을 꿈꾸는가

  이를테면 로봇 같고 잔혹하기만 할 것 같은 러브가 월래스에 대한 의사 대행적 입장과 자신의 억압된 인격 사이에서 흘리는 두 차례의 눈물과 같이, 수많은 작품에서 상상 가능한 온갖 유무형의 비인간에 수없이 응용되어 왔던 이 '인간 같은 것'에다 심은 연애 감정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비극이 되는지 관객더러 잘 음미해 보라며 요구하는 당 영화의 각별한 만듦새와 호소력은 괄목하고도 남을 만하다. 또 이를테면, 케이는 홀로그램을 단말기로 휴대하고 아파트를 영영 떠날 경우 자신의 실수로 조이를 행여나 잃지 않을까 하는 사태를 걱정하고, 조이는 자신 때문에 그를 쫓는 이들에게 오히려 뒤를 밟히지나 않을까 케이의 안위를 걱정하고는 자신의 백업판을 포기한다.

[2] 각성
  정서의 묘라 함은 유사 인간과 그 유사 등급에도 못 미치는 광학적인 존재의 연애담에 사로잡히는 순간에 생기는 감정이입이다. 러브의 구둣발에 짓밟히기 직전의 "I LOVE YOU!"는 조이가 단말마로 표출한 감정이었다. 물론, 조이의 절규는 소멸 직전에 주인을 위하는 척 또 한 번의 구매를 재촉하는 해당 프로그램의 숨은 마지막 스케줄이자 여운을 남기려는 자본의 상술일 수도 있겠다. 거대한 광고용 조이를 마주했을 때 케이의 기분이 어땠겠는가. 새 프로그램과 휴대용 단말기 구매를 고려하며 상심을 달래려 하거나, 아니면 조이가 어차피 시장에 널리 유포된 제품 수만큼이나 허상의 연인에 불과했고 그간의 자신의 애정도 허상에 불과했었다며 그 시퍼런 얼굴처럼 절망은 차갑기만 했을 수도 있겠다.



각성은 과연 차가운 환멸이었나

  그럴 만도 한 것이, 스토리는 애초부터 케이의 정신을 조금씩 피폐한 지경으로 몰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인데, 홀로그램의 등장에는 조이가 일개의 상품에 불과한, 그것도 케이 자신을 제작한 월래스 사의 제품임을 잊지 않도록 하는 장면과 조롱 섞인 대사가 집요하게 따라붙기 때문이다. 이로써 일부 관객의 머릿속엔 3D 연인에 흥분하는 사회 부적응 독신남의 인간 실격 같은 이미지도 눌어붙게 마련이다. 그래서 레이저 쇼를 막 끝낸 광고 홀로그램이 홱 돌아서는 무관심 못지않게 파리하게 조명된 케이의 안색을 얼마든지 조이와의 애정 행각에 대한 부정으로 여기고, 요컨대 Her(2013)에서처럼 테오도르가 만질 수 있는 에이미로 돌아갈 반성적 계기같이 '깨는' 대목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저 광고 앞에서 케이가 기억 속의 그 조이마저 허상으로 간주하였으리라고 보진 않는다. 82년 작의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레플리컨트'라는 종래의 기치 위에다 작금의 시대 분위기답게 당 영화가 사랑을 꿈꾸는 AI를 얹었다가 막판 반전인 양 도로 내려놓기란 어렵다. 조이가 인간과 레플리컨트와 인공지능이라는 존재 서열을 넘어서는 '인성'을 가진 듯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월래스 사 휘하의 독점 시장이 제공한 허구에 조이에 관한 사적인 기억을 예속시키고 이로 유사 현실의 기억을 극복하는 상심으로 규정한다고 보는 입장은 유사든 가짜든 허울이든 인간다움의 가치에 열려 있는 블레이드 러너식 분위기와 충돌한다.

  물론 디스토피아도 아닌 Her의 세계관에 눈감고 인간 테오도르의 배신감 및 거듭남에만 호응해서 케이의 각성을 목도하고 싶은 것이라면 이는 어딘가 그 각성을 인간의 앞잡이가 응당 해방군으로 전향하게 되는 '빨간 약'으로 보는 관점과 연동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케이가 더 원이나 존 코너의 운명을 짊어진 자는 아닐지언정 정치적으론 일견 정당해 보이는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이 해석은, 플라토닉한 동굴도 사이퍼가 그토록 되돌아가고 싶어하던 매트릭스도 기실 부분적으론 안주할 만한 것이었다는 심정을 거부한다고 보는 그놈의 각성이 하필이면 데커드 암살 실행으로 구체화되리라는 불행도 떠안고 가야 된다. 영화는 왜 케이가 레지스탕스 리더의 지령을 굳이 거부하고 데커드 구출에 나서도록 할까.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하게 만든 참에 오로지 이산가족 상봉에 그 한 몸 바치게 하기 위해서였나.

  그러기 위해서만은 아닌 듯하다. 전편과 속편이 데커드와 레이첼, 케이와 조이라는 두 커플에 관한 일종의 러브 스토리이고, 이번 속편이 케이와 조이의 관계를 데커드와 레이첼의 상징적 재활이라 보면, 35년이 지나서야 겨우 나온 걸작의 속편이 케이에 의한 데커드의 죽음을, 즉 홀로 남은 두 남자가 서로 죽고 죽이는 사투를 감히 클라이맥스로 삼을 리는 만무하다. 그런 상상은 아예 각본 집필 단계서부터 원천 봉쇄되어 있었다고 봐야 맞다. 그리고 론 울프인 만큼 평소 과묵했던 케이가 월래스 사의 광고용 조이를 어찌 바라보았는가는 월래스 손에 부활한 또 하나의 레이첼를 마주한 데커드의 반응이 대구를 이루어 대신 표현하고 있으며, 이 두 장면은 마치 죽었어도 죽지 않은 존재를 어떻게 품고 있었고 어떻게 품어 가는지에 관한 몽타주와 같다. 두 남자의 인성적 방향이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커드 구출 노선에는 전작과 후작이 디스토피아 속에서 꽃피운 로맨스가 걸려 있다.

[3] 전뇌적 자율과 해석적 포화(飽和)
  섹스로이드의 육체에 인공지능의 환영이 맞는 듯 어긋나는 듯 아슬아슬하게 결합하는 그 섬세하고 아름답고 기기묘묘하기 짝이 없는 장면은 조이 스스로가 케이 모르게 알아서 메리에트를 불러들였다는 점을 감안하게 되면 배려심으로 포장된 이 인공지능의 '자유로움'이라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차라리 메리에트가 형사 집까지 미행하면서 따라와 들이닥친 게 아니냐고 착각하는 편이 태생적 루저들을 위한 한낱 3D 위로용에 지나지 않는 프로그램에게 그런 능력 같은 건 있을 리 없다고 일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순간 당황하는 듯하다가도 조이의 돌출 행위를 이내 받아들이는 케이의 모습에서 그것을 오작동으로 치부하지 않는 만치 그 범위를 종잡을 수 없는 모종의 자유가 확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가 귀가하기 전부터 조이가 여러 수준의 사고 모드에서 그것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한 것이 분명한데, 이를 고려하기에 이르면 스스로 알아서 주인을 당혹스럽게 할 만큼의 무언가를 사전에 하거나 저지를 수 있다 함이란 도대체 무얼 뜻하게 되는가.


Luv : "I do hope that you're satisfied with our product"
경험하는 육체를 꿈꾸는 '고스트'

  메리에트와의 환영적 결합은 케이가 만든 질박한 음식 위에 놓인 홀로그램 요리로 앞서 예고된 바 있다. 그리고 해방군의 일원 메리에트는 홀로그램을 휴대하고 다니는 케이를 첫 대면에서 대뜸 조롱했던 여자다. 그랬던 여자가 어쩐 일인지 홀로그램의 시각적 오버랩을 자기 육신에 용인한다. 아무리 덮어씌워 봐야 신체 접촉과 온기와 쾌감은 나의 것이라고 실질적인 우위를 주장하는 생각에서나, 직업적인 수동성도 레지스탕스 임무 수행의 일환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태도일 수 있다. 한데 이에 조금 앞서 조이가 주도권을 잡는 묘한 대목이 나온다. 콜걸의 형상에 자신의 외모를 입히려는 동안 비웃기에 바쁜 여자 레플리컨트보고 조이가 그 입 다물라 한 것이다. 그리고 메리에트는 입을 다물고 싱크로에 잘 맞도록 몸짓도 고분고분 느려지며 부드러워진다. 그러고 보니 이 상황과 야릇한 분위기 자체를 애초에 조이가 연출했고 지금 주도하고 있다. 거기에 메리에트도 따르고 케이도 따른다. 그래 놓고 섹스에 돌입하기 직전에 영화는 조이가 원래 무엇이었냐며 잊지 말라는 듯 장면을 전환해서 대형 네온 빛 광고를 보여 준다. 그러나 또, 이튿날 아침이면 케이가 안 보이는 가운데 메리에트 앞에 스스로 기동해서 나타나선 볼일은 끝났으니 이제 나가달라는 조이의 질투심 어린 듯 보이는 차가움은 왜 보여 줄까.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 효과라도 노린 겐가.

  월래스 사가 만든 레플리컨트가 행위 규정을 벗어나면 같은 회사의 홀로그램이 감시 활동을 일삼을 법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인공지능 제품은 정말로 자율성을 가진 프로그램이었던 모양이다. 해킹으로 조종당하는 장면은 일절 나오지 않고, 있어 봐야 러브한테 위치 추적을 당하는 게 고작이다. 아니 자율성은 상상 이상이다. 데커드를 찾아 나설 때 조이는 위치 추적당할까 봐 걱정하며 케이에게 (아마도 전화 장치가 포함된)콘솔을 파괴하고 가자는 충고를 하는데, 이 판단 수준은, 옥상에서 비 맞으며 동공의 초점을 서로 맞추는 애틋한 순간에 조쉬로부터 걸려 온 전화로 일시 정지당하던 딱한 처지에 비하면, 이제 그냥 자율적이라 할 정도를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 희생을 의미하는 그런 자체 판단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케이의 의아한 표정 같은 건 전혀 안 나온다. 그 자율적 판단 능력을 전제와 같이 심부에 깔고 둘은 상위의 의미론적 무대로 올라가서 판단 내용을 문제 삼아 서로가 서로를 걱정할 뿐이다. 또 그 판단 수준은 창조주 월래스와의 단절을 명시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이 세계는 엘든 타이렐의 창조 의도가 로이 베티의 주거 침입과 살인 행위라는 잉여적 자율성을 그 부메랑 효과로서조차 예상치 못하고 종말을 맞이했던 그런 세계였다. 따라서 '인간'에서 추출된 인간다움의 이데아가 주입된 유사 인간을 그려 높이 평가받아 왔던 82년 작의 맥이 홀로그램에 레이첼의 탈선같이 과잉 자율성으로서 깃들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4] 각성의 재구성
  기억이 몇 푼짜리 소프트웨어처럼 유통되는 세상에서 주입식 기억을 가진 자가 정체성 진위를 두고 항상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 것은 '인간적으로' 늘 옳다. 그건 줄곧 흔들고 흔들리기 위한 약점이 되어 왔다. 케이는 유년 시절의 한 기억을 허구로 자각하는 것으로 인간과 자신을 구분 짓고 여성적 허상과 동고동락하며 살아가던 참이다. 그랬는데 여차여차해서 목각 말을 발견하기에 이르고 자신이 레이첼의 산도에서 나왔다는 믿음을 굳히는 순간 그는 심히 흔들린다. 그리고 서서히, 비록 인간의 개였고 끄나풀같이 살았으나 낮게나마 자기 완결적이었던 자의식에 환영과도 같은 '인간'이라는 마가 끼기 시작한다. 이 주문에 걸리면서 존재 가치는 한없이 상승하고 조이도 옆에서 그 상승 가치를 거들어 그에게 고유명사를 선사한다. 스텔린 박사를 만나 자신의 기억이 진짜라고 확답받을 즈음 이미 그의 심경에는 데커드 앞에 어린 시절의 사진을 당당하게 내보인 레이첼의 자존감과 신앙심이 어렸다.

  물론 케이 자신, 데커드의 정체성 여부에 따라 반쪽짜리 인간일 수도 있고 계속 차별받을 레플리컨트 후예로 남을 수도 있다는 사실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의 손에 죽기 전 새퍼가 언급한 "기적"은 그가 일련번호로 생산 출시된 모조 인간이 아니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생명 탄생의 프로세스와 서열에 관한 것이었고 거지에서 왕자로의 전환을 형용할 기적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케이는 요람에 관한 인간 일반의 형식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다 된 기분이다. 이를 기뻐하고 감격하는 표현과 눈물은 조이가 기꺼이 대신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인지 껍데기인지 모를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아기 탄생과 산모의 임종을 목도한 레플리컨트가 전한 진실은 정수리를 쪼개는 듯한 낙망이었다. 그는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아니 원점 이하였다. 데커드 암살이 저항 세력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그 저항군 리더의 간청도 잠시나마 어느 노인을 아버지라 믿었던 심정에는 비수를 꽂는다. 인간으로부터도 동류로부터도 조롱받던 조이마저 이미 잃은 상태다. 위로는 어디에도 없었다. 질척이는 발걸음은 무겁고, 내리는 빗물은 아파트 옥상에서 누린 밤비의 낭만을 식히려는 듯 그저 차갑기만 하다. 눈물 같은 빗물에 젖고, 핏물에 얼룩진 상처투성이 얼굴로 케이는 이제 핑크빛 대형 홀로그램 앞에 서게 된다.




  육신을 희구했던 조이의 노력과, 자궁의 아들이었기를 바란 그의 기대가 동질적 허상이었던 것처럼 마음은 다시 모조 인간이 된 공허만큼이나 텅 비었고, 저 거대한 핑크빛 조이도 그 어떠한 개별적 메모리조차 없는 텅 빈 상품이다. 제인 도 같은 상품명 '조이'가 존 도 같은 고객 '조'를 부를 때, 한때 홀로그램에게서 소중한 축하 선물같이 받았고 아버지로 보이던 자에게 인간의 표징인 양 자칭하여 전했던 고유명사도 이젠 익명 같은 무명이 되어 버렸다. 애정으로 교통했으나 서로 만질 수조차 없었던 기억 속의 안타까움도 그 핑크빛 무명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건 어느 것 하나 남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LAPD가 머지않아 퇴역시킬 쫓기는 껍데기 신세와 하락한 목숨 값을 받아들이고 환멸에 빠져 조에서 다시 케이로 돌아가고, 거기서 한층 더 초라하게 KD6-3.7으로 퇴행하던 참이었다.

  문득 그는 새퍼와 메리에트와 스텔린과 데커드 들을 주마등같이 떠올린다. 농부 새퍼는 성녀를 기억하는 묘지기로서 형사의 총에 죽어 갔다. 빈정거리다가도 자기 형상에 조이의 환영을 조용조용 가만히 허락했었던 메리에트는 얼마 전 케이의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월래스 사로부터 기억 제조 부문을 수주하던 스텔린 박사는 왠지 그의 과거를 자기 일처럼 눈물까지 흘리며 그의 거짓 기억이 진짜였다고 했다. 레이첼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데커드는 대정전 사태 후 숨겨 둔 딸의 자취마저 잃은 이래로 사막 한가운데 있는 카지노에서 프레슬리나 시나트라, 몬로 같은 소통 불가능한 낡은 홀로그램들의 쇼와 술과 개 한 마리와 낡은 기억으로 기나긴 고독을 달래며 홀로 숨어 살고 있었다. 노인이 왜 네댓의 주먹을 날리며 적과 동지의 구별과 '인간다움'에 대한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야 했는지, 저항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얻어맞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케이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기대 찬 행보 탓에 어떻게 조이가 소멸되고 데커드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릭 데커드의 고백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무의식이 아무런 논리적 연결점 없이 확신과 당위의 그림자같이 불현듯 떠올린 애나 스텔린의 모습은 진실을 알게 된 후로 견디기 힘들었던 이식된 기억과 고유한 기억의 분리를 다른 차원으로 몰아넣기 시작한다. 케이는 그녀가 아픈 옛 기억이 처음 만난 레플리컨트의 기억 속에도 편재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어 자기 어린 시절의 비극에 눈물짓고 케이의 비극에 흐느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레이첼이 남기고 간 아직 살아 있을 마지막 사랑과 희망의 소재지를 모른 채 월래스의 손아귀에서 고문과 절명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부성애를 생각해 낸다. 또한 자신이 이 부녀 간 해후의 유일한 연줄이라는 것도 의식하기 시작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간곡히 바라는 믿음은 그의 양심과 존재 가치를 걸 이 새로운 각성 안에서 이때쯤 벌써 혼융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월래스가 준비한 레이첼의 홍채 색을 보고서 영원히 상실한 레이첼의 푸른 눈을 상기하며 눈앞의 가짜를 거부하는 데커드의 단호함이 그 어떤 정체성도 못 가진 까만 눈의 네온 빛 조이를 바라보면서 기억 속의 눈망울을 떠올리는 케이의 결심이다. 레이첼이 죽었듯이 조이도 '죽었다'. 하지만 레이첼이 데커드에게 유일무이했듯이 마음의 눈은 벌거벗은 홀로그램 앞에서 주입되지 않은 기억 속의, 사랑을 꿈꾸던 홀로그램을 본다. 그리고 이제, 저항군 쪽의 지시를 우회하고 월래스의 앞잡이에 대항하는 길로써 복수가 데커드의 구출을 겸한다는 가능성에 목숨을 걸고자 레플리컨트 '조'는 빗물 젖은 권총을 점검한 후 눈물 같은 밤비 속으로 푸조를 띄운다.